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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종합

종이가 없는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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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5-02-03 12:09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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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주하는 동네가 재개발하게 되자 우리는 아들을 따라 큰 도시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하기 전에 아버지 산소를 찾아갔다. 먼 옛날 아버지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바로 이곳, 잎이 무성한 고목나무 그늘 밑에서 짐을 잔뜩 실은 지게를 내려놓고 저 멀리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 군 했다.
 
마중을 나가 기다리던 나는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저렇게 골똘히 하고 계시나?’라며 이해할 수 없었다.
 
긴 세월이 흐른 요즘,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아파트 창문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차수가 많아졌다. 그때마다 나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옛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때 아버지도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는 평생 ‘가난’이란 직장에서 뼈 빠지게 일만 해왔고 ‘가난’이란 굴레를 벗어 버리려고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녹슨 운명은 아버지에게 행운을 주지 않았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게에 빼곡히 걸린 가난과 굶주림을 버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와 딸 지영이가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딸 지영이는 물건이 조금만 낡아도 모두 버렸다. 버려진 물건 속에서 유난히 눈을 끄는 것이 있었다. 앞뒤가 뭉텅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구두이었다. 나는 그 구두를 품에 꼭 안으며 버럭 화를 냈다.
 
“야, 지영아! 너 이 구두 왜 버렸어!”
 
지영이는 벼락같은 호통 소리에 두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왜 화를 내세요. 그 낡은 구두를 이삿짐에 싸려고요?”
 
“그래, 이 구두만은 내가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다.”
 
나는 낡고 볼모양이 없는 구두를 으스스 가슴에 껴안았다. 지나간 쓰디쓴 추억과 사무치는 감회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60여년 전, 시골에 살 때 일이다. 그때 우리 집은 칠 남매이고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아버지는 설날이 돌아오면 장손인 형님에게 새 신발을 사주고 나는 달랑 양말 한 켤레를 사주었다. 그해도 아버지가 형님에게 새 신발을 사주었는데 속으로 불만이 가득한 나는 몰래 형님 신발을 훔쳐 신발가게에 가서 내 발에 맞는 신발을 바꾼 다음 숨겨놓았다. 설날이 다가올 무렵 아버지에게 발각되었다.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고 바지를 걷어 올리라고 소리를 쳤다.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고 머뭇거렸다. 그리고 무슨 결심을 한 듯 나의 종아리를 때렸다. 그날 아버지는 못 마시는 술을 많이 마셨다. 형님이 취한 아버지를 부추켜 안방에 눕혔을 때 아버지의 두 눈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회초리 쥔 아버지 마음도 나의 종아리처럼 피가 흐르며 아팠을 것이다. 자식 중에서 제일 똑똑한 둘째 놈이 왜 신발을 훔쳤는가? 원인 제공은 가난과 아버지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 잘못했을 때는 그 부당한 행위에 대해 부모의 사랑과 관계없이 엄벌하는 것이 아버지의 위치고 아버지의 존재가치라는 것을, 아버지가 더 잘 알기 때문이라고 지금에 와서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 후 몇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우리 집 형편은 어려웠지만 우등상을 놓치지 않는 나의 성적을 보고 아버지는 형과 큰 누나의 학업을 중단시켰다. 형은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하고 큰 누나는 도시 친척 집에 기거하면서 빵집에서 일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 형님과 누나께 너무나도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생각이 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보란 듯이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간절히 바라던 큰 도시의 대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우리 집은 물론이고 온 동네 사람들의 경사였다. 동네 사람들은 너도나도 우리 집에 와서 축하해주고 아버지는 감격에 넘쳐 마을 잔치를 크게 치렀다. 아마도 아버지에게는 그때가 당신의 일생에서 제일 행복하신 날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버지는 그날 처음으로 나에게 구두 한 켤레를 사주셨다.
 
“둘째야, 너 아버지 많이 원망했지? 아버지도 여태 새 신발을 신어 보지 못했다.”
 
사실 나 역시도 그때까지 아버지의 신발에 신경 써본 적이 없었다. 나는 무심결에 아버지의 신발을 내려다보니 다닥다닥 기운 신발은 바로 내가 신다가 버린 헌 운동화였다. 순간,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폭풍같이 가슴을 쳤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애써 참으려 했지만 끝내 흘리고 말았다. 어느새 아버지 두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나의 얼굴에 뜨겁게 떨어졌다.
 
아버지는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 품속에 안겨보았다. 아버지의 품속은 젖 냄새나고 안온한 어머니의 품과는 달랐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는 땀 냄새와 곡식 낟알의 구수한 향이었고 아버지의 가슴은 한없이 넓었다.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버지가 사주신 새 구두를 도저히 신고 다닐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앞뒤가 뭉텅하고 모양이 없는 구두는 너무 촌스러웠다. 철없는 나는 도시에 일하는 누님을 졸라 새 구두를 샀고, 학교 다닐 때는 누님이 사준 새 구두를 신고 방학 때 집에 갈 때만 아버지가 사준 구두를 신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어느 시골에 가서도 볼 수 없는 구두여서 그저 신발장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 바로 이 구두였다.
 
대학시절 어머니는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 충격이 컸는지 앙상한 몸은 더욱 작아지고 그나마 드문드문 남아 있던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해갔다. 세월은 늙고 지쳐가는 아버지의 육체 속에서 용해되어 아픔과 병밖에 주지 않았다.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 어느 날 시골 형님으로부터 아버지의 건강이 위급하여 병원에 입원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는 전보가 날아왔다.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벌써 차가운 바람이 부는 늦가을이었다. 풍성한 색채를 띠고 있던 나무잎도 애처로운 낙엽으로 되어 길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들끓는 욕망으로 몸부림치며 흐르는 냇물도 죽은 사람의 방처럼 쓸쓸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가 늙고 지치고 쇠약해진 아버지에게 덮치고 있지 않는가? 한평생 고생만 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치솟는 감회와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한평생 외삼촌의 아들이 결혼할 때 딱 한번 대도시에 가보았다. 나는 졸업하고 도시에 취업하면 아버지를 모시고 대도시를 구경시키는 것이 첫 소원이었다. 그러나 인색한 하늘은 나의 이 조거마한 소망을 실현하는 기회도 주지 않을 것 같다.
 
병원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햇볕은 침대에 조용히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아버지는 몹시 야위셨고 몸체도 한결 작아 보였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아버지는 눈을 번쩍 뜨셨다. 오래 기다림이 담겨있는 절절한 눈빛이었다.
 
“둘째야, 왔나? 너 공부 안 하고 뭐로 왔노?”
 
마비된 얼굴 근육은 무표정하였지만 눈가에서는 벌써 이슬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베개를 적시였다.
 
그날 밤, 아버지는 힘겹게 지고 오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으셨다. 고되고 힘겨운 여로를 마감한 아버지의 얼굴은 그래도 안온한 편이었고 야윈 얼굴이었지만 약간 벌어진 입가에는 흐뭇한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고된 일로 닳고 닳아 나무껍질같이 갈라지고 돌같이 굳어진 손등의 굳은 살 깊숙한 곳에 검은 흙이 그대로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실 때 지참할 이력서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일생은 고생과 끝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다만 아버지는 두메산골에서 나를 도시 대학교로 보낸 것이 가문의 영광으로 당신의 고생 보람으로 생각하고 그 속에서 안위와 행복감을 찾았다.
 
미워도 했고 두려워도 했던 우리 아버지! 내가 아버지가 된 후에 왜 아버지가 더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때로는 꿈에 아버지의 그 나무껍질같이 갈라지고 돌같이 굳어진 손등 속에 있는 검은 흙이 보인다. 아버지, 평생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우리 아버지, 하늘 아래서 편안히 쉬세요. 불효의 아들은 언제든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기억이 그대로 묻어 있는 구두를 물티슈로 잘 닦은 후 햇빛에 말린 다음 깨끗한 종이로 싸서 내가 항상 즐겨보는 책과 함께 이삿짐을 쌌다. 낡고 모양 없는 구두는 “종이가 없는 책”이었다. 아니 나에게는 “종이가 없는 교과서”였다.
/남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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