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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도둑도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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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3-11-04 22:21 조회2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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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빛이 따스한 요즘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새벽시장에서 무우 10근을 사다 깨끗이 씻어 썰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영업집 옥상에 운동장 같이 넓은 공간이 있어 아파트 사람들이 가을엔 고추 가지 무우를 말리면서 수다 떨며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상해에 있는 조카가 누우말랭이 반찬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조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내멋에 행복에 빠져 흥얼흥얼 썰어놓은 무우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줄세워가며 이쁘게 널어놓았다. 썰어놓은 무우가 해빛에 반짝인다. 눈부신 햇살을 듬뿍 받아 비타민 D를 한껏 품고 이쁘게 말라달라고 흐뭇해 하였다. 


요즘은 보안도 잘 돼있고 물질도 풍족해서 남의걸 훔쳐가는 불상스러운 일이 거의 없이 아파트 생활이 상당히 안전적이다. 해빛이 좋아 무우말랭이도 이틀낮과 하루밤이면 다 마른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무우쪼각을 뒤집어 펴놓으며 맑고 깨끗하게 마르는 말랭이를 보면서 일종의 성취감에 만족했다. 이틀째 되는 해질무렵 말랭이 거두려고 갔더니 펴놓은 보자기까지 오간데 없다.

 

옆에서 말리던 집 것도 없어졌고 그 옆집 것도 잃어져서 소란이다. 설마 훔쳐간건 아니겠지? 믿어지질 않았다. 정말 답답하고 온 신경이 잃어버린 그 무우 말랭이에 꽂혔다. 상실감에 수반되는 허전한 감정이다. 손실보다 쏟은 정성이 아까워 아쉬운 마음이다. 불안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친구들 채팅그룹에 올려 한참 속풀이도 하다보니 잊혀졌던 추억 한토막이 생각났다.


물자가 많이 부족하여 식자제도 배급받은 표로 구매하던 시절, 어느 음력설이 다가올 때즈음이었다. 단층 아파트 앞마당에 창고가 달린 집에서 살던 어린시절, 엄마가 설 준비로 창고에 음식재료들을 사놓았다. 그믐날 하루전 한밤중에 창고문고리 소리가 “달랑”하고 낮게 들렸다. 잠귀가 밝은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살그머니 나가 창고에 들어가보니 항아리 덮개가 열려져 있었다. 설준비로 사놓은 소고기 돼지고기 칼치 동태가 사라졌다. 보슬보슬 눈이내리고 있어 창고 앞에는 발자국이 뚜렷하게 나있었다.

 

엄마가 우리집 설준비를 누가 훔쳐갔다고 나를 깨웠다. 옷을 챙겨입고 엄마와 발자욱을 따라 갔다. 발자욱은 우리집과 머지않은 옆동 아파트 여섯번째 집대문으로 들어갔다. 바로 쫓아 들어가면 훔쳐온 물건이 아직 부뚜막에 있을상 싶은 시간이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는 나를 엄마가 막았다. 


”우선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자.”
자초지종을 들으신 아버지께서는 깊은 한숨으로 어두운 심연속에 묻히셨다. 


”그래도 설은 쇠라고 고기를 조금씩 남겨놓고 갔으니 그걸로 설을 쇠면 된다. 모르는척 하거라, 동네 나가서 소문내면 안된다.“


”설쇨꺼라고 고기한점 끊여주지도 않더니 도둑맞혔잖아요? 도둑잡을 수 있는데훔쳐간 물건 찾아와야지요.”

“흥, 우리도 못 먹은 고기를 ...” 


나는 뾰로통해서 엄마에게 대들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없었고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웠다. 사실 그날 저녁 막내동생이 소고기 먹고 싶다고 칭얼대는거 엄마가 동태 한마리로 동태무우국을 끓여서 달래였다.


훔쳐간 사람은 동네에서 꺽다리과부라 불리우는 아줌마였다. 남편은 아버지와 같은 직장의 동료였는데 오래전에 병으로 돌아가시고 홀어미가 아이 넷에 친정엄마까지 모시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늘 일거리도 알선해주고 직장공회를 통하여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오군 하였다. 그날도 엄마가 사온 식자재를 보관하느라 한창 분주할 때 아버지를 찾아와서 무언가 도움을 부탁드리고 갔다.

 

그리고 그날 밤에 ...


나는 같은 학년에 다니는 그 아줌마의 아들한테 분풀이 하려고 잔뜩 부어있었는데 엄마가 학교 가려는 나를 부르셨다.
“학교에 가서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소문내면 절대 안된다. 아버지 말씀 명심하거라. “ 훈육하시는 엄마가 더 미웠다.
“예~.“


나는 볼부은 얼굴로 휭하니 문을 닫고 학교로 갔다. 그애네 반급앞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그 남자애가 오자 입을 삐죽하며 “흥!“ 하면서 쏘아보고 돌아섰다. 영문을 모르는 그애는 “이 계집애가 왜그래?” 하는 표정으로 어이없는듯 쳐다 보았다.


세월이 가고 내가 나이 먹으면서 부모님들의 깊은 마음을 다소 알게되였다. 화해나 용서보다는 고소·고발이 앞서는 요즘 세태에 비춰보면 나의 부모님들의 베품과 이해하는 삶이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소중한 추억은 물건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가벼워지게 하였다. 훔쳐간 사람이 나름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안하였다.

 

상실은 때론 도둑도 용서해줘야 할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살다보면 해서는 안될일이지만 어쩔수없어 훔치고 용서를 구하는 가슴 아픈 사건들도 보게된다. 그러니 나의 부모님처럼 때론 도둑도 용서해야하지 않을가?

 

오늘따라 나의 부모님들이 더없이 존경스럽고 보고 싶다. 잃어버린 상실로부터 오늘도 마음속에 추억을 담는다. 오늘 아침도 햇살이 따스하다. 시장에 가서 무우를 사다 다시 말려야 겠다. 
/김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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