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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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2-04-19 22:31 조회823회 댓글0건본문
나는 60대 후반에 들어선 할미꽃이다.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흥취가 있어서 소학교에 입학해서 조선어문 시간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수학, 물리 시간이 되면 시간집중 안하고 맨날 시험을 보면 꼴찌였다.
그래도 조선어문, 한어 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낙제는 면하고 반급에서 반장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반급에서 학생 책임자로 활약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다.
사회에 나와서 글쓰기를 열심히 하여 연변일보, 연변방송국에 여러 편의 원고를 투고하였고 뭇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아줌마란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시골서 농사짓고 부녀회장을 하다가 오매에도 그리던 한국 땅에 발을 들여 놓았다.
2010년 한국어 능력시험과 추첨을 거쳐 사랑하는 남편과 고향을 떠나 2010년 11월 20일, 인천공황에 도착하면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첫 일은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등록증을 발급받는 것이였다. 이 후 나는 고향후배의 주선으로 간병인 교육받고 간병 일을 시작하였다.
간병일은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간호사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보호자들의 뒤따르는 시선도 의식해야 했으며 또 환자의 짜증스런 스트레스도 받아줘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나도 나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간병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아침 4시에 일어나 환자들의 귀저기를 바꾸어주고 세수시키고 방 청소를 하고는 가끔씩 여유시간이 있으면 글을 썼다.
간병인들이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은 나의 습작시간이다. 그러나 밤 9시가 되면 방의 전등불을 끈다. 그럼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글을 써서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 그러나 간병 일을 하면서 글쓰기도 쉬운 일은 아니였다. 우선 책을 사러 갈 수가 없으니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뜯어서 글을 썼다.
나의 이런 행동을 지켜보던 동료 간병인 친구들도 자기 방에 있는 지난 달력을 찢어다 나에게 지원했다. 심지여 간호사들도 필기장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쓴 글들이 지인의 소개로 하여 KBS한민족방송에 소개되고 신문에 발표되기도 했다.
더 기쁜 일은 이렇게 보낸 글이 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소식을 듣고 함께 일하는 간병인들과 간호사들도 축하해주었다.
그 후로 매일 글쓰기를 견지하면서 미숙한 작품이나마 한민족방송, 한민족신문 등 신문방송에 발표되였다. 나의 노력이 인정받고 열매를 맺는 순간이다. 이때의 마음은 누구도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처음에는 너무도 기뻐서 막 울기도 했다.
2018년 12월 20일, 내가 쓴 글이 “민들레 여성‘책에 실리고 책 출간식에서 나는 꽃다발을 목에 걸고 책도 선물로 받았다.
지금은 집에서 손녀를 보면서 매일 인터넷에 들어가서 글도 보고 자기의 글도 올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남은 인생을 글 쓰는데 바치고 싶다. 이것이 아마도 나의 즐거운 삶이 될 것이다.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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