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정, 오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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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18-02-12 11:40 조회7,805회 댓글0건본문
두달전, 나는 40일 되는 갓난애를 데리고 친정집에 거처하고 있는 가정집에 주 5일, 반나절 근무하는 가사도우미로 들어갔다. 노소 3대 6식솔의 가정인데 애 외할머니의 인자하고 상냥한 인상이 나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다.
출근 첫날, 옷을 갈아 입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나오는데 “이모님, 가글하셨어요? 밖에서 들어 오시면 꼭 가글하셔야 해요.” 애 외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네~~사모님.” 하고 다시금 화장실에 들어가 가글을 하고 나왔다.
“이모님의 전용 컵이에요.” 사모님(애 외할머니)은 자그마한 일회용컵 대여섯개를 건네주시며 말씀을 이어갔다.
“ 방 4개를 다 청소할 필요는 없구요. 애 엄마 방과 작은 방, 그리고 거실만 청소해 주시면 되구요. 그 외에 빨래가 있는데 특히 애 빨래는 세탁기에 4번 헹군 후 꼭 손으로 또 두벌 헹구어서 삶아 내어 다시 세탁기에 넣고 탈수해 주세요.
어른들의 수건도 요즘은 매일 삶아야 하구요. 바닥 수건 걸레도 3-4일에 한번씩 삶아 주세요. 그리고 화장실은 마른 상태로 쓰고 있기에 항상 물기가 없게 하셔야 하구요. 저녁반찬은---.”
사모님의 ‘지시’를 들으며 나는 첫 인상과는 달리 되게 까다로운 집을 만났구나 생각했다. 나는 먼저 애 엄마방에 들어가 창문부터 활짝 열었다. 추운 겨울이라 결로로 인해 창문의 물 방울이 흘러내려 창틀안에 질벅하게 차넘치고 곰팡이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창문 유리부터 창틀까지 깨끗하게 닦고 나서 애 어른 이불 할것없이 창밖에 대고 훌훌 털어 냈다. 그런후 너무 깊숙해서 방치했는지 먼지가 뿌연 침대 밑 안쪽까지 팔을 쭉 뻗어 청소기로 돌려내고 막대 물걸레로 마무리 했다.
다른 방과 거실도 같은 식으로 구석구석 빈틈없이 청소를 끝냈다. 마지막 빨래가 세탁기에서 돌고 있었다. “저녁반찬은 무얼로 할까요?” “글쎄. 무얼 해 먹지?” 나의 물음에 사모님이 도리여 웃으며 반문해 왔다.
퇴근할 시간까지 한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럼 중국 요리 해 주세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식 재료들로 꽉 차서 한번 꺼내면 다시 넣기 힘들 정도었다.
나는 먼저 감자와 당근, 고추를 채로 썬 볶음채와 계란 토마토 볶음채를 한 다음 시금치, 계란, 대파, 생강, 마늘,감자전분 재료들로 시금치계란국을 해 놓고 저녁상을 차렸다.
그리고 설거지 마무리로 씽크대를 닦고 있는데 “이모님은 깔끔해서 저의 마음에 쏙~ 들어요. ”사모님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칭찬해 왔다.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그만 하시고 들어 가세요.” 첫날 출근은 이렇게 끝났다.
이튿날, 출근하자 사모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모님이 반찬을 맛있게 해 주셔서 엊저녁 우리 식구들 잘 먹었어요. ”, “ 맛있게 드셨다니 저가 오히려 감사하죠.” 차츰 나는 이 집의 포인트는 ‘깔끔 깔끔 또 깔끔’이란 걸 깨달았다. 결백증에 가까운 사모님은 주방에 기름기 튀는 걸 질색해서 볶음채는 거의 안 해 먹었단다.
나는 매번 요리를 하고 나서 기름기가 있던 없던 가스렌지와 벽쪽을 깨끗하게 닦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집에서만 오래 있다보니 움직이기 싫었는데 출퇴근 하니 자연히 운동도 되었고 점차 나만의 즐기는 노하우도 터득했다. 청소 할 때는 팔을 최대한 길게 쭉쭉 뻗치기, 특히 침대 밑과 쏘파 밑을 청소할 때는 ‘백배 절 운동’식으로 꿇어 앉아서 천천히 안쪽 끝까지 들이밀었다가 당겨오기를 댓번씩 하고나면 바닥도 깨끗해지고 어깨가 시원해나며 온 몸이 거뿐해 진다. 거기에다 가끔 콧노래까지 흥얼대면 즐거움이 배로 된다.
책장과 거실장식장 청소는 ‘허리 굽혔다 일어나기 운동’을 가상하면서 하고 설거지 할때는 다리를 팔자로 벌리고 최대한 허리를 펴고 했다. 심지어 욕조실에 들어가 걸레를 헹구고 나서도 손깍지한 팔을 머리위로 쭉 뻗치기를 한두번 정도 하고서야 나왔다.
저녁식사 마련도 즐거웠다. “간단하게 뚝딱하는거 같은데 다 맛 있어서 저의 아들이 밖에서 외식하고 올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집 밥이 맛 있다고 자주 집에 와서 먹어요.” “이모님이 센스있게 알아서 척척 잘 하신다고 친구들한테도 자랑하고 왔어요.” 사모님의 칭찬에 나는 보람을 느꼈고 내가 한 음식은 다 맛 있다고 하니 요리 할 재미가 났다. 꽉 차 있던 냉장고도 공간이 생기고 정리되기 시작했다.
“묵은 김치 드세요? 좋아하시면 드릴려구 담아 놓았어요.” 내가 출근한 사흩날 사모님은 배추 김치 한통과 달랑무김치 한통을 담아 주었다. “고마워요. 그렇잖아도 김치찌개 해 먹고 싶었는데요—” 나와 사모님과의 대화가 점점 많아지고 서로 속심말도 터 놓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배 고파 할까봐 사모님은 항상 간식거리를 식탁위에 놓아 두었고 동그랑댕, 약밥, 짜장, 물만두 등 별다른 음식을 할 때마다 밀페통에 담아 두었다가 퇴근할 때 챙겨 주는 자상함도 있었다.
한번은 사장님이 친구들과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고기를 나누어 오셨는데 사모님이 그중 세 덩이를 나한테 주었다. 덕분에 우리집 식구들은 난생처음 맛 있는 멧돼지고기를 맛 보았다.
어느날, 사모님이 절임용 밀테통을 사왔는데 안쪾에 뜨지 않게 하는 눌림용도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더니 이튿날, 사모님이 똑 같은 걸 또 하나 사 오셨다. “이모님이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선물 드리려고 사 왔어요.”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기 마련. 나는 중국에서 사 들고 온 최상급 목이버섯을 큰 지퍼백에 꽉 채워 담아서 사모님댁에 갖고 가 목이버섯 냉채와 잡채, 짜장, 짬뽕 등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중국에서 사 온 땅콩도 중국식으로 볶아서 가져 갔다.
그리고 사모님이 냉동칸에 오래 있던거라 버리라는 민물고기를 가져다가 중국식과 한국식 ‘짬뽕매운탕’을 끓여서 큰 밀페통에 담아 들고 갔더니 너무 맛 있게 드셨다고 극찬을 해왔다.
이렇게 나는 요즘 귀여운 외손자가 태여나서 60여세인 나한테도 일자리를 만들어 준 사모님댁에 고마운 마음을 안고 일상에서 느껴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만족하며 모국에서의 즐거운 삶을 만끽하고 있다.
/이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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