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푸른 9월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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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1-09-10 11:24 조회1,422회 댓글0건본문
맑고 푸른 하늘에 선들선들한 가을바람, 은은한 가을향기가 불어오고 기쁨과 환락으로 넘치는 9월의 한복판에서 스승의 날을 맞는다.
그날은 마침 수요일이였다. 1교시 수업 때문에 나는 여느날 보다 일찍 출근을 하였다. 교정에 들어서니 마음이 상쾌하다.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언제나 가장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혼자서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문이 메지게 들어와 나를 빙 둘러싼다. 그리고는 빨리 교실로 가자는 것이였다. 약간은 상기된 얼굴에 즐거움과 기쁨이 배시시 묻어나고 신비함이 어려있다.
교실 앞에 가니 키가 제일 큰 남학생이 두 손으로 나의 두 눈을 살며시 가린다. 그러더니 잠간 눈을 감으라고 하면서 나를 보고 익살스럽게 눈을 찡긋 한다. 작은 키다보니 나는 아이들 속에 파묻혀 교실에 들어섰다. 이어 남학생이 내 얼굴에서 손을 떼더니 이제 눈을 떠도 된다고 하는 것이였다.
눈을 뜬 나는 깜짝 놀랐다. 언제 등교하여 꾸며놓았는지 교실 네 면은 알록달록한 풍선으로 장식되여 있었고 축제마당처럼 이쁘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전체 학생들은 두 줄로 쭉 늘어서서 일제히 박수를 치며 축하의 인사를 올리는 것이였다. 한 학생이 빨리 지나가라고 재촉한다. 대통령이 된 기분이다. 내가 천천히 걷자 학생들이 일제히 목청을 돋구어 노래를 부른다.
“별들이 조으는 깊은 밤에도
꺼질 줄 모르는 밝은 저 불빛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
내 가슴 언제나 뜨겁습니다,
아, 아, 우리 선생님
존경하는 선생님...”
학생들의 노래 소리를 듣노라니 내 마음이 먹먹해온다. 이어 명치끝으로부터 뜨거운 용암이 솟구쳐 오른다. 내가 미처 감동의 바다에서 헤여 나오지 못하고 어리벙벙해있을 때 부반장이 달려 나오면서 나에게 카네이션 꽃묶음을 안겨준다. 아름다운 카네이션은 내 품안에서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또다시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며 눈앞이 흐려진다. 어쩐지 감정조절이 쉽게 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눈치챌가봐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흑판을 보니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란 글이 씌여 있었고 솜씨 있게 그려진 하트모양의 예쁜 그림들이 춤을 추고 있었으며 아이들이 써놓은 메시지로 흑판은 미여진다.
교탁 앞으로 다가가려 하지 부반장이 생글생글 웃으며 한쪽 자리로 안내한다. 봉긋하게 솟아있는 물체위에 예쁜 종이가 덮여있다. 그 애가 종이를 벗겨내자 하트모양의 둥근 케익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리고 그 옆에는 학생들이 쓴 편지도 함께 수북이 놓여있다. 내가 편지를 손에 들자 아이들은 먼저 케익부터 먹어보라고 야단법석인데 나는 왜 이렇게 목이 꺽 메는 걸가?
30명 학생들이 오늘을 위하여 스승의 날 자기 담임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기꺼이 주머니를 털고 머리를 맞대고 얼마나 진지하게 상의하고 빈틈없이 준비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히 서둘렀을까? 정작 아이들은 선생님이 오기 전에 서둘러 일을 끝내느라 아침밥도 먹지 못했을 것이고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자기 용돈을 쪼개 쓸 생각을 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였다.
오늘의 나는 황후가 부럽지 않다. 교원으로서의 한없는 긍지와 자랑이 느껴져 행복하다. 오늘과 같은 잔잔한 삶의 환희가 허락되고 보람도 있다. 이 시각 봇물 터지듯 다가오는 기쁨 뒤에 밀려오는 후회에 마음이 아려온다.
그동안 내가 아이들의 가녀린 어깨위에 너무 많은 짐을 잔뜩 올려놓고 내 얼굴을 빛내려고 학년 1등을 하라, 추천생을 쟁취하라, 좀만 학년등수를 올리라 하면서 너무 큰 욕심은 부리지 않았는지, 아이들의 꿈을 무참하게 짓밟지는 않았는지, 사랑이라는 이름 좋은 매를 들어 알게 모르게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하고 학생들에게 서둘러 케익을 베여 나누어주고는 편지를 하나하나 읽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선생님과의 만남은 제 성장의 길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입니다. 평시에 선생님께서 언성을 높혀도 다 우리들을 위해서라는 걸 우린 압니다. 이제 남은 일 년을 더 열심히 해서 선생님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계셔서 저는 엄마 없는 외로움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디를 가든 선생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제 마음에 꿈을 심어주고 희망을 심어준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동안 개구쟁이 우리들을 키워주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스승의 날 축하합니다.”
하나하나의 편지를 읽노라니 내 눈 굽은 기어이 젖어들고 말았다. 학생들의 조그마한 배려에도 이렇게 가슴 벅찬 행복이 따르고 이렇게 큰 감동이 있다니. 그것은 스승을 향한 학생들의 모든 편지가 사랑과 감사를 담고 있으며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글들이기 때문이리라.
오늘의 감격이 계속 이어져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사랑스런 제자가 살아있고 학생들의 가슴속에는 따뜻한 선생님으로서 내가 늘 자리 잡도록 해주어야지.
제자들의 앞날에 희망이 탑이 한 계단 두 계단 튼튼하게 올려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지.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다 비워지지 않는 샘물 같은 내 사랑과 정열을 끌어내 부어 주리라. 삼척교단이야말로 사람을 키우는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보람찬 직업이 아닌가?
카네이션이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가슴 벅찬 오늘의 선물들을 내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리고 맑고 푸른 9월의 하늘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내일의 희망을 그려본다.
/류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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