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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근공검학 상장" 떠오른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중방송 작성일21-12-14 17:25 조회1,2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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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이 아니건만 문득 "근공검학 상장"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하학기와 고등학교 2학년 하학기에 나는 "근공검학 상장"을 받았다.
 
1953년8월에 초등학교 신입생을 둔 엄마들은 현성 백화상점에 가 책가방, 필통, 손칼, 눈금있는 나무자, 32절지 필기장 10권, 고무달린 연필 1타스를 샀다.
 
그 대오에 엄마는 끼이지 못하셨다. 전해에 5살 나는 딸을 잃은 엄마는 극심한 심리고통으로 입원치료를 받으셨다. 게다가 중등학교에 다니는 형님의 기숙사비, 식사비, 학비를 마련하려면 엄청난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나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비록 장난이 심하지만 눈치 있는 나는 엄마한테 무리한 요구를 하지않고 혼자 해결책을 생각했다.
 
나는 마을의 상점을 찾아가 누런 종이 4장 쑥대처럼 생긴 쑥대연필 2대를 사려면 계란 몇개면 되는 가고 물었다. 3개면 된단다.
 
집에 온 나는 엄마한테 계란 3개 있는가를 물었다. 사용처를 들으신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계란 3개를 쥔 나는 마을 상점에 가 누런 종이 4장과 쑥대연필 2대를 샀다.
 
집에 온 나는 주방의 식칼로 누런 종이를 32절지로 잘났다. 덤덤히 앉아 보시던 엄마는 나의 생각을 읽고 거들었다.
 
자른 종이를 4몫을 나눠 차곡히 쌓은 후 준비한 송곳으로 윗쪽에 알맞은 간격으로 구멍을 낸 후 형님이 버린 흰 실 3선으로 꼬아 만든 낚시 줄을 구멍에 넣고 묶었다.
 
32절지 필기장 4권이 완성됐다.
저녁에 집에 온 형님한테 부탁해 만든 필기장 첫 면에다 산수연습장 , 산수작업장, 어문연습장, 어문작업장이란 글을 붓으로 쓰게 했다. 그 아래에 나의 이름 세 글자를 썼다. 온전한 필기장이 됐다.
 
연필은 엄마가 식칼로 깎았다.
 
개학 날 아침에 나는 연필이 끼어있는 교과서 2권, 필기장 4권을 들고 학교로 갔다. 우리집 상황을 잘 아시는 담임선생님께서 나의 필기장을 보신 후 웃으시면서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셨다.
 
나는 주눅이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만든 필기장을 쓰면서 졸업 했다.
 
검학은 했는데 근공은 어떻게 했나?
 
초등학교 3학년 때에 마을상점 벽에 광고가 붙었다. 마른 도라지 1근에 50전씩 산다.
 
그 광고에 나의 눈이 번쩍 했다.
마을 뒷산에는 도라지 천지였다.
 
나는 하학하면 숙제를 한 후 뒷산에 올라가 도라지를 캤다. 나의 친구 주용남이도 따랐다.
 
하루 캔 것은 이틑 날에 껍질을 벗겼다. 방학에도 놀지 않고 도라지를 캤다. 한 학기 사이에 캔 말린 도라지는 10근 넘었다.
 
나의 엄마도 용남의 엄마도 웃으셨다.
 
가을 방과 후와 겨울 방학을 헛 보내지 않았다.
 
일요일엔 꿩이 잘 오르는 산 중턱에 꿩 올가미를 놓고 매일 오후 4시에 그곳에 간다. 운 좋은 날엔 꿩이 2마리 걸렸다. 2원을 벌었다.
 
겨울방학 눈 내린 이튿날엔 꿩이 잘 내리는 옥수수 밭에 꿩 덫을 놓고 부근의 한족 집에서 지킨다. 꿩이 푸드득 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면 한 마리가 덫에 걸려 퍼득거린다.
 
산 꿩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팔린다.
 
몇 년간 이렇게 했기에 초등학교 5학년 하학기에 나와 주용남은 학교 교장이 발급한 " 근공검학 상장" 을 받았다.
 
중등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우리 집 경제상황은 더 악화됐다. 엄마는 자식 셋을 잃으셨다. 아버지께서도 크나큰 심리적 타격으로 입원치료를 받으셨다. 형님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중등학교에 갈 때 나는 여전히 만든 16절지 필기장, 연필, 철필, 잉크 한 병을 책보자기에 싸 들고 갔다. 신발은 고무신, 옷과 바지는 여러 곳 기운 걸 입었다. 한 학급 학생 60명인데 이처럼 초라한 차림 학생은 나 혼자다.
 
까불기 좋아하는 어떤 애들은 날 골리기 시작했다. 갱기골에서 온 거지라고.
 
나는 속으로 별렀다.
 
"공부에서 보자"
첫 기중시험에서 나의 대수, 어문, 한어성적은 5점이었다. (당시 5점제를 실시했다) 그 후부터 힘과 주먹이 센 남자애들이 나의 주변에 쏠렸다 .더는 놀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도 계속 만든 필기장을 썼다. 그리고 만년필을 사지 않고 계속 철필을 사용했다. 신발은 고무신이 아니고 해방 신이었다. ( 당시 군인이 신던 운동화를 해방신이라 불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하학기에 성교육청 고등학교 2학년 입시 신청생 모의고사를 치를 때에 처음으로 만년필을 써보았다.
 
내가 5명 합격자 명단에 들자 학교 교도처 교도주임께서 나의 필기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직접 만든 수, 리, 화 필기장을 보시고 깜짝 놀라셨다.
 
며칠 후 학교 교도처에서 회의실에 나의 필기장을 전시했고 최영철을 따라 “근공검학” 하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나에게 " 근공검학 상장"을 발급하셨다.
 
이런 나였기에 연변대학에 갈 때 해방신을 신었다. 지금도 나의 생활은 검소하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검소하게 살련다.
/최영철
경기도 부천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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